사실 아이를 기르면서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면 족하다 여기다가도, 성적도 잘 나오기를 기대한다든지. 선생님과 친구에게 인정받는 아이이니 뭐든 잘 해낼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까지 갖게 된다든지. 나 역시 꾹꾹 눌러 놓아도 욕심이 어느새 살포시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그러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지그시 눌렀다.
'그 어떤 경우든, 아이가 내 곁에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이 생각이 들면 그 어떤 경우에도 다 감사하게 된다. 모든 욕심이 사그라진다. 이 생각은 욕심이 날 때 쓰는 최고의 약이다. 특히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어질 때 그걸 누르는 방법도 있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는 아이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자연히 참견을 하기 쉬운데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며느리가 내 아이한테 이렇게 하면 좋지 않겠지.' 만약 내가 마구 대하는 것처럼 내 아이들을 다른 사람이 그렇게 대한다면 참 기분 나쁘겠지?'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고 내 아이 편을 들어 그 사람과 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참는다. 내가 이 아이들을 하늘로 대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대해 주지 않는다. 내가 하늘로 여겨도 남들은 내 아이를 땅으로 여길까 말까 한다. 그러니 나라도 하늘로 여겨야지. 집에서라도 넘치게 대접해 주는 거다. 마음을 다해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그 어떤 사랑에 비길까? 늘 내 하늘, 내 사랑인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우선 사랑하는 내가 행복해진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가 건강하니까 무조건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나면서부터 점점 욕심이 없어지는지 그냥 아이가 내 곁에서 숨쉬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감사할 일이라 여겼다.
전에는 '내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또는 '이런 아이가 좋은데'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다 문득 접한 신문 보도.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합격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어떤 아이를 원하는가. 무엇이 정말 소중한가를 기사를 읽어 가며 다시 생각했다. 그 학생이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고 인생을 즐기다 갔으면 마음이 덜 상할 텐데, 공부만 하다 갔다면, 치열하게 대학 입시만을 위해 살다 갔다면 정말 억울하겠다 싶었다.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아껴야겠지만 온전히 다 바칠 필요는 없는 것을. 지금 당장 삶에 사랑을 느끼고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그런 생각으로 살던 내게 그 기사는 전율로 다가왔다. 내가 살아 있고 그래서 아이 곁에 있을 수 있고 이 아이들이 살아 있어서 내게 살 냄새를 풍긴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이의 살 냄새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도록 좋다. 그 냄새를 맡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못할 만큼 행복하다. 아기 때의 젖 냄새부터 어리면 어린 대로, 크면 큰 대로, 아이의 살 냄새가 좋다. 냄새도 아이를 따라 크낟. 남자아이는 어렸을 때도 냄새가 다르다. 얼마나 땀 냄새가 강한지. 신기하게도 아이의 땀내엔 아빠 냄새가 난다. 그런 건강한 살 냄새들을 즐기다 보면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힘들고 지치는 마음도 아이의 예쁜 얼굴을 보면 눈 녹듯 사라진다. 반짝이는 작은 생명체, 자고 나도 시들지 않는 예쁜 꽃, 그게 바로 아기다.
내 아이를 만난 세상 더는 소원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가슴이 벅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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